깔깔 사랑방

옛날 뻥

곡우(穀雨) 2009. 11. 12. 12:28

서로 풍이 너무 커서

 

합천 해인사에 있는 가마솥은 크기로 유명했고, 안변 석왕사의 측간은 높기로 유명했다.

해인사 중은 석왕사의 측간을 구경하러 떠났고, 석왕사의 중은 해인사의 가마솥을 구경하러 길을 떠났는데 마침 두 중은 중도에서 서로 만났다.

석왕사 중이 먼저 물었다.

대사는 어느절에 계시며 어디로 가시는지요?

소승은 합천 해인사에 있어요. 지금 안변 석왕사 측간이 유명하다기에 구경하러 가는 길입니다.

해인사 중이 대답하자 석왕사 중이 말했다.

소승은 마침 안변 석왕사에 있는데 합천 해인사 가마솥이 유명하다기에 저도 구경하러 가는 길입니다.

우리 둘이 이곳에서 만난 것도 퍽 우연치만은 않은 일이군요

서로 이같이 말하고는 광대싸리를 자리로 삼아 앉아 얘기했다.

대관절 귀사의 가마솥이 크기로 유명하다는데 얼마나 커서 그러는거요?

석왕사 중이 해인사 중에게 물었다.

그 큰 모양은 정말 설명하기가 어렵소. 지난 해 동짓날에 팥죽을 거기에 끓였는데, 상좌께서 조각배를 타고 죽물을 저어 바람을 일으켜 가더니 여지껏 돌아오지 않는군요

해인사 중의 이 같은 말에 석왕사 중은 크게 놀라,

과연 크군. 그건 동해바다보다 더 넓은 게 아니오? 했다.

아무리 동해바다보다 넓기야 하겠나요? 그런데 듣건데 귀사의 측간이 높기로 유명하다는데 도데체 그 높이가 얼마나 되지요?

해인사 중이 석왕사 중에게 물었다.

그 높이야 말로 형언할 수가 없어요. 소승이 절을 떠날 때 소승의 대사께서 대변을 보셨는데, 그 똥덩어리가 아직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을거라 생각됩니다

이같이 허풍을 떠는 석왕사 중의 말에 해인사 중은 경탄하며,

아무리 높기가 장천보다야 하겠어요. 그러나 그다지 차이가 멀진 않을 거외다.

비로소 그 중은 서로 말하길,

이제 그 말을 다 듣고서야 굳이 가 본댔자 무슨 소용이 있겠소 하고는 서로 헤어져 각자의 사찰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