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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산조의 형성과 전승

곡우(穀雨) 2015. 8. 30. 12:20

[대금산조의 형성과 전승]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이진원 교수의 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 평전에서

박종기는 전라도 진도 근거지의 세습무 집안에서 출생했다. 남도의 음악들은 대부분 무속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예술로 승화시켜 나갔다. 그의 대금산조도 이런 풍토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한숙구와 그의 아들 한수동도 박종기가 대금 산조를 짜기 이전에도 산조를 연주하고 있었고 북한의 최옥산(최옥삼)이 대금산조와 단소 산조를 남기고 있는 것으로 봐서 대금 산조는 박종기 이전부터 연주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금 산조의 틀을 박종기가 정립했다는 것은 음악계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 대금 산조의 전승표 ***

한숙구->한수동

박종기 -> 한주환 -> 이생강. 서용석

김광석 -> 박동현

강백천 -> 김동식 -> 한범수. 송부억쇠

전홍련 -> 편재준

이충선 -> 이상룡

방용현 -> 김원식

l  한일섭 ->원장현

* 김동진은 한주환과 강백천의 양쪽을 혼합 사사함?

최옥삼 -> 북한의 대금 연주자들

 

산조대금은 넓은 취구와 큰 지공으로 제쳐 불거나 숙여 불어 음정을 조절하고, 손가락을 이용하여 지공을 점차적으로 막거나 떼면서 음정을 만들어 나간다. 이러란 살아있는 음들의 조화로 산조를 구성한다 박종기의 대금산조는 이러한 테크닉들의 정화를 보여주나 오늘날의 산조와 같은 세련된 맛은 좀 적다.

박종기는 갈대청 소리를 적절히 사용하여 산조의 맛깔스러운 음들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청 울림이 산조의 기본청인 평취로 부는 전폐음에서 날 때는 정악대금의 청성곡을 듣는 듯 장쾌하고 호쾌한 우조 성음을 만들어 낸다. 이 청소리가 고음에서 날 때는 슬픈 계면의 가락과 어우러져 사람의 심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대금산조에는 보통 우조(羽調)계면조(界面調) 두 가지 음계가 사용된다. 이러한 조는 음양, 손바닥의 안과 밖과 같아서 항상 공존하여 서로 상생상극하는 절묘한 관계에 있다. 이러한 음양의 원리가 대금산조에 녹아있다. 이러한 음양의 원리는 대금산조의 연주자이면서 이론가인 한범수 명인이 그의 산조론에서 주장하기 이전부터 대금연주자들에게는 몸 속 깊이 음악의 생성원리로 자리잡고 있었다. 박종기의 산조음악을 들어보면 이러한 것이 쉽게 확인된다.

오늘날의 대금산조계를 보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생강과 서용석을 중심으로 이생강의 대 금산조와 서용석의 대금산조의 소리 더늠 산조가 연주되고, 시나위 더늠의 강백천류 대금산조가 함께 전승되고 있다. 이 중 소리더늠의 이생강과 서용석의 대금산조가 강세를 보이는데 이들이 모두 한주환류의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 박종기-한주환으로 이어지는 전통의 맥이 오늘날 꽃피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