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스승 복

곡우(穀雨) 2016. 8. 27. 19:00

나의 선생님 한 분-

국민학교부터 전문대 졸업까지 14년간 여러 선생님, 교수님 밑에서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사회에 나와서도 배움의 시간이 있고 그 때마다 선생님은 모셨지만 아무래도 학창시절의 선생님들만한 위치의 존재감은 갖기 어렵다. 그래서 선생님이라 함은 정규학교시절의 선생님들로 압축하게 된다.

지금 내 나이 쉰하고도 일곱-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공자의 말씀은 현자에게 해당하는 계측기준이겠지만 어쨌든 세상사를 이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임은 맞다. 이런 나이의 나에게 초등학교 때의 선생님이 아직도 존경스럽기만 한 것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며칠 전 모처럼 연락을 드렸다.

요즘 그림을 그리는 중이니 블로그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거든 찜하라 하신다.

소득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느라 늦게 선생님의 블로그를 검색했더니 나와는 다른 포털에서 지식 나눔 분야에서 상당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모양이다. 

긴 시간을 대장암, 담낭암과 싸우셨고 현재까지 잘 이겨내고 계시는 것 같다. 마치 장거리 산주릉을 종주하는 산꾼의 여정처럼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길을 걸어 가시는 것이다.

블로그에 올려 놓으신 그림들은 동양화 계통이다.

이 땅의 전통적인 회화에 만학의 열정을 바치고 계신다. 그림을 볼 줄 모르는 눈으로 얼마나 잘 그리시는지 모르지만 작품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는 것으로 봐서 상당한 공부의 진전을 보고 계시는 듯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정년퇴직 하시고 은퇴자의 생활을 하시면서 다시 만학의 길에서 보여주는 이런 열정은 다른 이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제자에게는 또 다시 경외감을 갖게 만든다.

국민학교 6학년때의 담임이셨던 이 선생님은 그 때의 나에게 진정한 교육을 하셨던 분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현대의 50] 이라는 책은 나에게 주셨던 비싼 생일 선물이었다. 그 책은 어두운 시절 시골의 어린 학생에게 넓은 세상을 알려주고 가슴을 틔워주는 마구간의 열쇠였다.

‘진공상태에서 질량이 다른 물체들의 추락속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은 지금도 생각나는 선생님의 질문이었다.

과목별 전문 지도를 하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담임선생님 한 분이 모든 과목을 담당해야 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선생님의 영향력은 다방면으로 사고의 성장판을 자극하였다. 지금까지의 내 사고성향의 기질은 이 분 선생님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의 선생님들은 자칫 엇나가기 쉬운 시절임에도 무난한 인성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전문대학 때의 전공영어 교수님은 5.18민주화운동으로 학교가 문을 닫아 수업일수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애드가 엘런 포우의 애너밸 리를 열정적으로 소개해주셨다.

정말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으니 선생님 복은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오직 이 분 선생님과 연락이 되고 있으니 특별한 사제지간이다.

이런 선생님이 지금 다시 나를 깨우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를 그렸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그 그림은 그린 사람의 작업으로 이 시대에 전해지고 있다. 무용총의 그림은 특수했던 장인의 작품이겠지만 우스꽝스런 호랑이 그림이랄지 여러 민화들도 작가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후세인들에게 감상의 작품이 되고 있다. 어떤 인터넷 기사에서 현재까지 지구상에 태어났던 인간의 숫자를 약 700억명으로 추산한다고 했다.

사람의 가치가 묘지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듯이 반드시 생의 흔적을 남긴 사람만 잘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만족도는 다르다.

박경리 선생은 토지를 쓰면서 삶의 보람을 느꼈을테고 패티김은 현란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를 평생 오르내리면서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고 느낄 것이다. 남편이 국회의원을 했어도, 자식이 서울대를 나왔어도 자신의 것이 아니면 가치가 자신의 것은 아니다.

700억명이나 다녀 간 지구상에서 내 삶의 값어치는 어느 수준에 있을까?

좋은 스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가르친다어디에선가 본 글이다.

나이와 병을 모두 이겨내고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고 계시는 선생님은 영원한 나의 선생님이시다.


"배우고 익히고 터득하자"

죽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