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아침 시간 사치

곡우(穀雨) 2013. 3. 2. 12:02

아침 가게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옆 가게 직원 총각이 커피 한 봉과 둥굴레차 1각을 사 갔을 뿐이다.

 

오늘은 한국경제의 칼럼 하나를 스크랩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 '총각'이라는 단어의 어원과 지금 심각한 사회문제인 결혼에 연계시키는 풀어쓰기로 나름 박식함을 자랑하고 있다.

서양철학자들을 주욱 열거하면서 그 대단한 사람들이 총각으로 살고 갔다고 쓴 그 한 줄에 나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부터 근대의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등이 모두 총각으로 살았든 말았든 그 객관적 사실을 열거하는 작가의 손가락 방향을 나는 쳐다보지 않는다.

그저 나는 이들에 대한 백과사전적 조사를 한다.

 

이과를 준비하는 큰 아이가 언제 이들을 접할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전문대를 졸업하고 난 뒤 접했던 니체 등을 조금씩이나마 미리 먹여둬야 논술 대비용이 될 것 같은 생각에 가시 바른 생선살 먹이듯 이들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문과학교를 다니면서 혼자 수학ll를 하겠다며 도서관을 다니는 아이가 얼마나 시간을 내서 이 글과자들의 맛을 기억해둘지 모르겠다.

 

나이먹어 사귄 친구들 중 참 박학다식하면서도 표내지 않는 이들이 몇 있다.

명문대학을 졸업시킨 친구들이 아이들 교육과정에 어떤 수고를 했을까 짐작해보기도 한다.

내가 갖춘 소양이란 그 친구들의 그것엔 턱없이 낮은 것이고 나의 이런 수고도 그 친구들의 자녀교육에 비해 아주 미약한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고액과외비를 담은 봉투를 건네는 것 만큼이나 나는 이런 스크랩 작업이 즐겁다.

 

짧은 칼럼 하나를 붙잡고서 아침시간 세 시간을 흘려 보낸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한 번 읽는데 몇일을 보냈었던가?

동지나해 대구리배 좁은 침대에서의 삼십년 전 여름날들이 지금 기억에 생생해진다.

내 젊었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도 즐겁고 이 조각들을 아이가 읽어주니 애비의 마음으로써 또 좋다.

그래서 이 아침 소중한 시간을 소득없이 보내면서도 기분은 좋다.

즐거운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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