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 思惟

병신년 송년모임 황금박쥐 커피

곡우(穀雨) 2016. 12. 17. 15:07

금박쥐 송년모임에서 특별한 커피를 마시고 왔다.

 

12월의 딱 중간 날이었던 상당히 추운 불금이었다.

왜 강화도까지 찾아가야 하는 장소인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 시원하게 소통되는 밤길은 멀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연기 가득한 비닐 움막 속에서 이차원의 그림처럼 웅성이는 사람들이 친구들인 줄은 도로에서 보고서도 담박에 알겠다.

바깥에서 전어를 굽느라 추위를 감수했던 친구들-

수연이 덕분에 모임에 들 때마다 맛있는 전어를 푸짐하게 먹는다.

포항에서 직송했다는 과메기는 비린내 남아있던 이전의 기억을 말끔하게 바꿔주는 맛난 것이었다.

와사비 진하게 묻혀 마른김에 싸 먹는 과메기 맛은 욕심내서 많이 먹게 하는 별미였다.

 

모두가 실내에 모이니 작지 않은 팬션 실내가 꽉 찬다.

트레이닝바지, 모자, 덧버선 등 선물을 잔뜩 가져온 재형이,

집 사람들을 위해 챙겨가라고 미용팩을 가져 온 종열이,

상품권을 제공한 신입 친구,

원주에서 치악산막걸리를 보내준 완식이,

...

마음들이 참 고맙다.

오랜만에 참여해보니 더 정겨운 것 같다.

두툼하게 배를 채우며 수연이가 보여주는 빔프로젝트 화면의,

환갑 때 가자는 알프스트래킹 참가비 도표를 보며 동참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돋궈본다.

 

주방 식탁에서는 현숙이가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 친구를 이번 모임에서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단번에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쥐모임 친구들은 새로 온 친구들과 언제나 이런 식으로 친해져 왔으니 이런 접근이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이 친구는 커피를 여간 정성스럽게 내리는게 아니다.

자신의 단골집 공방커피를 가져 왔다는데 곱게 분쇄한 커피가루는 대개의 공방에서 사용하는 누런 포장지에 들어 있었고 그들만의 암호?가 명기되어 있었다. 커피 가루를 코에 가까이 대고 향을 맡아 봤으나 많은 커피 전문점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향이다. 어디 커피냐고 물었으나 여러 품종을 섞어서 볶았으므로 잘 모르겠단다.

그럴 것이다.

한국에서 제일 많은 양이 팔리고 있는 동서식품의 맥스웰하우스 원두커피들도 하나같이 특정 원산지 원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없다. 모두 주요 품종에 여러 가지 다른 품종을 섞어서 향과 맛을 순화시키고 조절하며 특별한 기술로 향을 배합한다.

그래서 내가 따로 공급받고 있는 이레의 케냐AA블랜드 제품이 본연의 맛에 제일 가까운 형태로 감지된다.

호불호가 시원하게 갈리는...

 

하여간 여러 품종 커피의 특징을 두루 합해놓은 것처럼 두루뭉술한 그 커피는 현숙이의 손에서 비로소 제 가치를 발산한다. 이 친구는 드리퍼와 서포트외에 전용주전자까지 챙겨와서는, 끓인 물을 좀 식히면서 학목처럼 생긴 그 주전자의 주둥이를 통해 가루를 적시고 다시 조금씩의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린다.

정성을 내리고 있었다. 정성을 묻혀 내린 커피는 진하고 맛이 좋았다.

핸드드립커피는 도올의 말처럼 거칠게 분쇄해서는 빠르게 드리핑하고 진하지 않은 상태에서 향만 뽑아 마신다는 개념이 일반적이다. 그런 개념은 마치 숙련된 조리사가 음식을 만들 때, 특정 향료를 진하게 쓰지 않고 재료들의 맛이 자연스럽게 잘 어우지는- 미각에 최고의 감동을 주는 배합비를 주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는 자주 듣는다. 주인을 미워하는 주방장이 업소 망하라는 속셈으로 음식에 비싼 참기름을 듬뿍듬뿍 넣어서 식재료비용을 많이 발생시켰다는데, 결과는 손님들이 더 많이 찾아들어 주방에서 오히려 고생을 더하게 되었다는데 이는 우스개소리가 절대 아니다.

참기름 향이 진할수록 그 음식을 먹는 입은 더 강한 향에 자꾸 끌리게 된다.

술을 마시면 술이 술을 땡긴다는 말도 같은 맥락일 수 있는데 커피도 마찬가지다.

에스프레소 커피가 대세인 요즘 세상에 후다닥 내리는 핸드드립커피는 커피보다는 차에 가깝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내리느라 진해지는 커피는 물을 타서 희석을 한다해도 괜찮은 맛을 가진다.

 

차를 우려내는 과정도 정성을 투입하고 그로 도를 즐기는 것을 다도라 하지 않는가?

핸드드립커피를 정성껏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최고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문점 커피가게에서 자동기계로 쓱쓱 뽑아내는 커피는 고급인력이 전혀 투입되지 않는다.

아무런 감이 없는 아르바이트 젊은이들이 그저 지침대로 기계처럼 움직여 뽑아내는 커피는 순수커피재료값에 약간의 유통마진만 붙이는 것이 납득성 있을 것이다.

한 잔에 5천원 이상 하는 커피는 핸드드립처럼 숙련자의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내 가게는 아주 조그마해서 언제나 커피향이 꽉 차 있다.

문을 열고 가게에 들 때마다 코가 맡는 진한 커피향은 참 괜찮은 느낌이다.

친구들 많이 모여 오랜만에 얼굴 보며 나누었던 정담도 좋았고 숙련된 커피아줌마의 손맛도 아주 기분 좋게 느꼈다.

기계커피가 아무리 진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정성 진한 핸드드립커피처럼 나는 하룻 밤 내 시간을 그렇게 기분 좋게 쓰고 왔다. 내 가게를 들면서 진하게 맡는 커피향처럼...

강화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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