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떼고 붙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곡우(穀雨) 2023. 3. 22. 20:21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이 세상 사람들아 사람들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인생도 절로 절로 유수도 절로 절로

강물처럼 흘러 간다 덧없이 흘러 간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이 세상 사람들아 사람들아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가수 전유경씨,

이 노래도 참 잘 부른다

(아쉽게도 대금율보를 찾아 볼 수가 없네...)

 

靑山兮要我以無語 彰空兮要我以無垢

聊無愛而無憎兮 如水如風而終我

 

나옹선사의 시로 알려져 있는데,

原詩唐詩라는 말도 있는갑다.

누구 初作인진 몰라도

시의 감성에 공감하여 사람들이 전해오길 나옹화상 이후 700년이다.

 

남한 여러 곳에 소재한 오래된 사찰들의 내력을 보자면, 너 나 할 것 없이 신라 때 창건했다하고 그 주인공은 고승 몇 사람이 거의 다 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절만해도 몇 곳인지 셀 수도 없다.

의상대사가 승의 역할을 하면서 그 많은 절을 어떻게 다 지을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사찰들이 자신의 내력을 부풀리는 수단으로 유명 고승들을 팔고 있는 것일게다.

원시종교가 아프리카 황무지에 지어진 원시인들의 움막이라면 현대종교는 초고층 거대 건물이라 비교하면 될 것이다.

건축기술이 발달하면서 원시인 움막이 현대식 초고층 건축물로 발전하기에 이른 것처럼,

종교인들도 긴 세월 동안 다듬고 키우며 덧살을 붙이고 장식해온 결과물이 현대종교일테다. 이런 바에 비하면 사찰 창건자에 의상대사를 사칭하는 것 정도는 애교이겠지..

 

문학작품에 붙여진 사람들의 덧칠 작업도 만만찮을 것이다.

나옹이 쓰지 않았다해도 사람들이 나옹의 시로 받아들인다면,

천당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에 가는 사람들의 심리와 별반 다를 것도 없을테다.

 

또한 이 시는 형태도 다르게 알려져 있는데 옮기는 사람마다 다르게 적은 결과일테다.

 

약간 다르게 불려지는 노래로 알려진 시는 아무래도 현대인의 입맛대로 쓰여진 느낌이다.

 

靑山見我 無言以生  (견아: 나를 보고~  <- 이런 표현은 700년 또는 천년 전의 형태는 아닐 것이다.)

蒼空見我 無塵以生

解脫嗔怒 解脫貪慾

如山如水 生涯以去

靑山兮要 我以無語

蒼空兮要 我以無垢

聊無怒而 無惜兮

如水如風 而終我

 

(가수 김용임씨의 곡은 대금율보가 보이는데 가락이 쫌 그렇다. 양복바지에 짚새기 신은 꼴??)

 

하여튼 한시가 어찌 쓰여지든 괜찮은데,,,

시에 살을 덧붙이고 다듬는 사람들의 마음은

시가 추구하는 바와는 거꾸로 가는 꼴이다.

 

'시간을 떼고 붙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조 반정과 삼전도 비  (4) 2024.09.15
평시조  (0) 2023.02.20
登黃鶴褸  (1) 2023.02.18
雖少 230129  (0) 2023.01.29
화의죽정  (0) 2020.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