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조 때 임진왜란을 그토록 참혹하게 겪었던 이유는,
정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정파적 이해를 우선했기 때문이었다.
왜가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는 첩보가 왕에게 많은 횟수 올라갔기에, 선조는 마지못해 외교사절단을 보내 일본의 사정을 살피고 오라했다.
그때 일본에 갔던 정사는 황윤길,
부사는 김성일이다.
황윤길은 왜가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했는데,
김성일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영의정이었던 유성룡이 김성일을 불러 왜 거짓보고를 했냐고 물었을 때
김성일은 백성들의 동요를 감안해서 그렇게 보고 했다는 대답을 했다.
당시 집권세력은
유성룡을 우두머리로 하는 '동인'이었다.
황윤길이 속했던 '서인'에 묻지마 반대를 하는 짓이었는데,
자신들의 정치노선을 위해서였다.
전쟁준비를 하려면
부자들에게 돈을 많이 걷어야 하니
보수세력인 동인이 전쟁준비가 싫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보수정치인들은 거짓말의 달인들이다.
선조는 김성일의 보고를 채택하고 전쟁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왜군에게 쫒겨 명나라로 도망가려고 의주까지 피난갔던 선조와 유성룡-
그 피난길을 함께했다고 전후 유성룡은 일등공신이 되었다.
(코메디같은 역사~)
반면 의병을 모아 싸우라는 선조의 명에 따라 광해군은 함경도 일대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가 왕이 되었는데,
나라를 전란에 빠트린 보수층을 손보려고 많은 개혁을 해대니 보수세력은 결국
왕을 쫒아내버렸다.
인조반정이다.
온갖 나쁜 핑계를 다 갖다 붙여 나쁜 왕이라며 심지어 왕이라는 칭호도 붙이지 않았다.
세자때 칭호였던 광해군으로 불렀다.
그런 세력들이
다시 세운 왕 인조-
명나라는 기우는 달이었고
여진족이 세운 후금은 날로 강성해나가는 나라였다.
고구려때 한 나라였던 사이이니 형제로 지내자는 제안을 뿌리치고 명나라만 추종하겠다는 정책에 후금은 조선을 손봐주러 왔다. 그게 병자호란이다.
"박씨부인전"은 그 시기를 배경으로 나온 개구라소설이다.
남한산성에서 끌려나온 인조가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땅에 이마를 찧으며 죄를 빌었다. 삼전도의 치욕이라고 했는데,,,
오늘 석촌호수에 놀러 가서
처음으로 '삼전도 비'를 봤다.
그 후금은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을 통채로 먹었다.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망한지 천년 넘어 고구려의 여진족 청이 중국을 먹었는데
아직까지도 이 나라에서는 그런 가치를 거론하지 않는다.
초등학생들에게 '박씨부인전'을 고전이라고 읽히면서
이성계가 여진족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삼전도의 치욕은
두 갈래의 의미가 있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쇄뇌된대로 오랑캐에게 당했던 아픔이라 생각하는 민중의 역사의식과,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보수의 손해 계산-
저 비석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강남출신 엘리트검사 집단에서는 군대 가는 검사를 바보라고 조롱한다고 한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청계산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나라를 팔아먹어도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얘기들을 했다고 했지.
나라가 망할 때마다
보수가 앞장섰던 이 땅에 나라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이
외국인들의 시각에는 "신기하다"는게 당연할 것이다.
석촌호수 둘레길을 뛰어 다니는 외국인들이 많아 신기했고,
삼전도 비가 존치되고 있는 사실도 신기했다.
보수에게 진짜 의식이 있다면 당장 부숴버릴 비석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