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28(일) 백운대 김개남장군길
산머루산다래 공지 등반
참여자 : 곡우, 숙주, 지에스, 무제님 등 4명
등반 소요시간 : 약 5시간 15분
08시 산성입구에서 어프로치 시작 -> 초입까지 2시간 소요
새벽 6시무렵까지 비가 와서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어찌해야 되나 생각했지만 일단 기상예보를 믿기로 했다. 출발위치까지 이동하다보면 시간이 많이 지날 것이고 판단은 현지에서 해도 될 것 같았다. 바위면 상태나 하늘 낌새를 보고 여차하면 인수 남면으로 이동해서 하드프리하면 그도 나쁘지 않을테니...
어프로치하는 동안 숲속의 꽃향기가 진하게 코를 후비는데 그 느낌이 참 좋다.
언제 비를 뿌려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하늘은 흐린 상태다.
암장에 도착해서 살펴보는 루트는 2년만의 눈길에서 확인된다. 산이야대장님을 따라와 써미트길 하나를 해보면서 봐두었던 길이다.
'김개남장군길'
내가 이 루트를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개척자라고 알려진 김기섭님의 마음에 동참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시대에 학교를 다니면서 뒤틀린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민주화가 많이 진행된 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 나라에 진정한 민주화는 언제부터 시도되었던 것인가?
우리가 받았던 학교교육에서 서양역사는 거의 곡해없이 수용한 것 같다.
아! 좀 불편한 기억이 있다.
내가 전문대학 1학년 때 교양필수과목으로 들었던 국민윤리(1979년에는 이런 과목이 있었다) 강의담당은 역사학 교수님이었다. 일반 역사학에 대한 강의는 청산유수였던 그 교수님이 마르크스, 헤겔 쪽에 이르러서는 실타래 꼬인 것처럼 논리를 풀어나가질 못하셨다. 안스러울만큼 답답한 시간이었건만 곧 이해했었다. 유신독재가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는 사람들의 소문은 공포였다.
교수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정반합 이론을 제대로 입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시대였다.
그 후에도 가치관이 꼬인 시대를 살다보니 이 땅에서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이야기하기에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프랑스나 영국의 민주화 역사를 보면서 정의한 말일테다.
이땅에서의 민주화 운동 역사는 어디에서부터인가?
김기섭님은 동학혁명의 가치를 프랑스대혁명만큼 위대하게 평가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 견해에 결연하게 동의한다.
바윗길 하나를 오르면서 거창하게 혁명을 뇌아리는 것은 좀 우습지만 개척자가 쏟았을 정성에 작은 마음 하나라도 보태고 싶은 것이다. 그는 백운대 남면의 벽에 가장 어려운 길을 내고 김개남장군길이라는 이름을 붙이겠다고 했다는데 길에는 그가 쏟아 붓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1피치; 30미터
퀵도르만으로 오르는 구간이다.
중간 위치의 크럭스 부분을 살피는데 아무래도 무브가 그려지지 않는다. 볼트 거리는 대개의 11a난이도에서 그렇듯 가깝지 않다. 언뜻 보기에는 대충 될 것 같지만 무브가 그려지지 않으면 전진이 안되는게 11급 수준의 길이다.
붙어보고 홀드를 찾자는 생각으로 출발한다.
흐르는 스탠스에서 오래 버틸수는 없는데 손끝에 제대로 걸리는 홀드를 확보하지 못하겠다. 한 손 클림핑 상태에서 먼 홀드를 공략하기에 힘이 모자란다. 추락-
세번을 미끄러졌다. 통과는 했는데 어떤 무브로 전진했는지 복기가 되지 않는다.
위에서 두번째 볼트 구간도 홀드가 애매했다. 텐을 받고 쉰 후에 통과했다.
초보자에게 쉽게 열려서는 안되는 길이다. 길은 낸 사람의 마음일테다.
확보점이 매우 불편하다. 쌍볼트에 쇠사슬인데 테라스가 없어 후등자의 등반시간이 길어지면 힘들어진다.
2피치; 30미터
역시 퀵도르만으로 오르는 길이다.
그냥 그런 크랙이 끝나면 슬랩등반으로 이어진다. 슬랩면은 작은 누룽지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잘 이용하면 스탠스와 홀드로 부족함이 없다. 누룽지들이 없다면 상당히 가파른 사면인데 그런 것들이 있어서 겨우 할 수 있었다.
확보점은 두 곳을 사용할 수 있다.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테라스가 넓다.
찬 바람에 추위가 느껴진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어야 했다. 그래도 춥다. 비 온 뒤의 구름만 낀 날이라서다.
3피치; 35미터
첫 볼트가 꽤 멀리에 있다. 어려운 조건이 아니므로 먼 것이다. 그래도 심리적인 안정은 발끝 움직임에 도움이 된다. 아랫쪽 홈을 찾아 캠을 하나 설치했다. 듬성듬성 있는 볼트에 줄을 걸고 진행. 중간에 턱을 만나 우측으로 2미터 가량 이동한 후 쉬운 크랙을 오른다.
오버행 크랙이 있는 바로 아래에서 왼쪽 벽 외볼트에서 종료. 윗쪽 크랙에 블다2호캠을 끼우고 90슬링으로 확보점에 백업했다.
역시 테라스가 없어서 발이 많이 불편하다. 세명이 하나의 비너에 매달리기 부담스러워서 2호캠보다 좀 더 윗쪽에 3호캠을 설치하고 나는 그 비너에 매달렸다.
나중에 보이는 왼쪽의 쌍볼트- 이곳 확보점에 오르기 전에 그것을 봤다면, 그리고 이 확보점을 좀 더 유심히 관찰했더라면 그리로 가서 확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 확보점은 누군가가 오래되지 않는 싯점에 설치한 것이리라.
이 구간은 등반성은 낮은데 확보점 조건은 12급이다.
4피치; 35미터
3호캠을 첫 퀵으로 출발한다. <- 이것은 잘못이었다. 윗쪽 사정을 모르면서 지참한 캠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피치 아랫부분에도 캠을 두개나 두고 왔다.
침니등반 스타일로 5미터 가량을 무릎재밍하면서 올라야 한다. 다행히 중간에 고정캠이 있어서 그것을 이용했다. 크랙은 직벽에 닿고 다시 직벽구간을 올라서면 약간 누워있는 세로크랙에 진입한다. 크랙의 길이가 4~5미터 가량되는데 왼손으로 레이백 자세를 한다. 그런데 캠이 다 쓰이고 없다. 출발하면서 두고 온 3호 캠이 정말 필요한 곳인데 노캠이라니 환장하겠다. 볼트에 닿을 때까지 왼팔에 올인했다.
크랙이 끝나고 밴드에 닿으면 슬랩면이 직벽에 가까운 각으로 서 있고 볼트들이 연이어 보인다. 사면은 까칠까칠해서 발이 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자일이 몇 차례나 꺽인 상태고 첫 침니구간 이후 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조건이므로 추락은 용서받을 수? 없다. 첫 피치에서 이미 날아가버린 온사이트이므로 볼트를 밟아 버렸다.
확보점은 쌍볼트에 와이어다. 테라스도 아주 넓다. 해보진 않았지만 어쩌면 이곳에서 2피치 확보점으로 60자 하강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하강링은 사용을 안한 탓에 녹으로 겉이 까맣다.
등반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구간이다. 텐션을 하느라 힘을 쓰고 있는데도 온 몸이 덜덜 떨리도록 춥다.
5피치;
5.6급의 쉬운 좌향 크랙이다. 그래도 높은 곳이라 캠을 두 개 설치하고 정상에 도달한다.
정상에는 확보점이 제거되었다. 맞은 편 작은 틈에 캠을 끼우고 후등자 빌레이-
정상에서 종료한 시각이 15시 45분,
10시 반쯤 시작했으므로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등반 길이는 짧은데 소요시간은 길었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이로써 알 수 있다.
특이하게 4피치 한 구간은 전혀 북한산과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설악산에 있는 것 같았다. 유선대의 이륙공천 4피치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깔끔한 수행을 하진 못했으나 만족도가 꽤 높은 등반이었다.
개척자가 불우함에서 그만 벗어나시길 바래본다.
뒤풀이는 들꽃식당에서 무제님이 쏘셨다.
두번째 볼트(출발 볼트까지 치면 세번째 볼트 위치임)에서 보는 1피치 크럭스 부분
내려보는 크럭스 부분-
자일이 꺽이는 곳.
좋은 홀드의 마지막.
나는 흐르는 홀드에 지지하고 서서 직등으로 미세 홀드를 공략했다.
이 볼트에 퀵을 걸려고 세번이나 미끄러졌다.
등반자의 아랫쪽 슬랩 부분이 2피치의 크럭스 구간.
아주 얇은 누룽지-
손 끝에 클림핑, 발끝에도 살짝 걸친다.
3피치 확보점은 이 멋진 루트의 약점이다.
동그라미의 확보점은 누군가가 따로 만들었을 것인데 그 위치도 좀 아니다. 선등자를 주시하기에는 유리하지만 진출입이 불편하겠다.
현재의 외볼트 아랫쪽에 쌍볼트를 박는 것이 좋겠는데 등반자를 볼 수 없는 위치상 불리함은 해소되지 않는다.
힘든 길에서 모두 무난한 등반을 했슴에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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